그날 밤, 컴퓨터를 믿지 않은 남자

1983년 9월 26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모스크바 남쪽의 소련 핵미사일 조기경보센터에서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화면에는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경고가 떴습니다. 당직 책임자였던 44세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가 보고를 올려야 할 순간이었습니다.
잠시 뒤 상황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처음 한 발이었던 미사일이 다섯 발로 늘어났습니다. 컴퓨터는 공격이 시작됐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경보 시스템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의 긴장이 극도로 높았던 시기였습니다. 불과 3주 전에는 소련군이 대한항공 007편을 격추해 26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핵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다는 경보가 뜬 것입니다.
페트로프는 화면을 보면서 이상한 점을 떠올렸습니다. 미국이 정말 소련을 선제 핵공격한다면 겨우 몇 발만 발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다루던 위성 조기경보 시스템은 아직 완전히 신뢰하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만 믿고 경보를 무시하기에는 위험이 너무 컸습니다. 그의 판단이 틀렸다면 실제 핵미사일이 소련으로 날아오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페트로프는 결국 상부에 실제 공격이 아니라 시스템 오류라고 보고했습니다.
그 뒤에는 기다리는 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실제 미사일이라면 곧 지상 레이더에도 잡혀야 했습니다. 페트로프는 훗날 당시를 회상하며 23분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비로소 안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판단이 맞았습니다.
조사 결과 위성이 구름 위로 반사된 햇빛을 미사일 발사의 섬광으로 잘못 인식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미국이 쏜 핵미사일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이 사건이 곧바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련의 군사기밀이었던 탓에 오랫동안 외부에서는 거의 알지 못했고, 냉전이 끝난 뒤에야 페트로프의 판단이 알려지게 됩니다.
그를 흔히 ‘세상을 구한 남자’라고 부르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페트로프에게 핵무기 발사 권한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그의 보고 하나만으로 소련의 보복 핵공격이 자동으로 시작되는 구조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핵전쟁으로 번질 수 있었던 잘못된 경보를 실제 공격으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2007년 페트로프는 미국 사우스다코타의 미니트맨 미사일 국립사적지를 찾았습니다. 냉전 시절 자신이 경계해야 했던 바로 그 미국 핵미사일 기지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언젠가 적의 가장 중요한 군사시설 가운데 하나를 직접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24년 전 그가 화면에서 보았던 미국의 핵미사일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그는 그 미사일이 실제로 배치돼 있던 곳을 자신의 두 발로 걸어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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