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황제가 살아 계셨다면...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 21일 승하한 것을 두고 독살설이 제기되었습니다.
고종의 시신을 염했던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시신이 사후 1~2일 밖에 안되었을때도 심하게 부풀어져있었고 이가 이미 다 빠져있는 등 부패가 정상인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부분이 독극물 중독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으로 얘기된바 있습니다.(출처: 고종 독살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만약 고종이 독살되지 않았거나 암살 시도를 극복하고 더 오랜 기간 생존했다면, 한국의 역사에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를 중심으로 몇 가지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역사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개인적인 의견으로 역사의 큰사건을 얘기한다는 것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 역사를 더 다양하게 이해하고 싶어 정리한 것이니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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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1운동의 변화
고종 황제의 서거는 1919년 3·1운동이 발생하는 중요한 계기 중 하나였습니다. 만약 고종이 암살되지 않고 더 오랜 기간 생존했다면, 3·1운동의 양상도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3·1운동의 지연 또는 변화
고종의 죽음은 일본의 식민 통치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폭발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습니다. 만약 고종이 살아 있었다면, 3·1운동이 같은 시기에 발생하지 않았거나, 다른 형태로 전개되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 까요 - 고종이 직접 독립선언을 주도했을 가능성
고종은 이미 을사늑약(1905)과 한일병합(1910)에 반대하며 여러 차례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가 살아 있다면, 직접적인 독립선언이나 국제사회에 대한 호소를 시도하며 우리 민족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주도했을 0 가능성도 있습니다.
2. 대한제국 복원 가능성
고종은 대한제국의 황제로서 일본의 식민지화를 끝까지 반대했던 인물입니다. 만약 그가 살아서 독립운동을 주도했다면, 다음과 같은 변화도 있었을 수 있습니다.
- 임시정부와 연계된 대한제국 체제 유지 시도
1919년 4월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공화제 체제를 채택했지만, 고종이 살아 있다면 황제 중심의 정부를 추진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독립운동 내에서 입헌군주제와 공화제 간의 문제도 심화되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요.. - 국제 외교전을 통한 독립운동 강화
고종은 과거에도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는 등 국제 사회에 독립을 호소했습니다.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파리 강화회의(1919) 등에서 독립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제기했을 가능성 또한 있습니다.
3. 일본의 대한제국 정책 변화
고종이 살아 있었다면, 일본의 대한제국 통치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 고종 중심의 독립운동 탄압 강화
고종이 독립운동의 상징적 지도자로 계속 존재했다면, 일본은 그를 제거하기 위한 더욱 강력한 억압 정책을 펼쳤을 것입니다. 이는 국내의 항일운동과 해외 독립운동 조직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 문화통치의 조기 도입 가능성
실제로 3·1운동 이후 일본은 강압적인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정책을 바꿨습니다. 만약 고종이 살아서 지속적으로 독립을 주장했다면, 일본이 강경 탄압과 회유 정책을 동시에 펼치면서 식민 통치를 다르게 조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4. 독립운동의 조직적 변화
고종이 계속 살아 있다면, 독립운동 세력 간의 조직적 연대가 달라졌을 가능성 또한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공화정을 기반으로 했지만, 고종이 생존했다면 군주제 지지 세력 존재 가능성 등 독립운동 내부에서 체제에 대한 문제도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단순히 개인적 의견입니다) 또한 고종이 생존했다면, 서구 열강과의 외교를 강화하여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보다 체계적으로 전개할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5. 결론: 대한제국과 한국 독립운동의 향방
고종이 암살되지 않고 생존했다면, 한국 독립운동은 보다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억압은 더욱 심해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떤 방향이 되었든, 고종이 생존했을 경우 한국 독립운동은 더 강한 결집력을 가질 수도 있었고, 반대로 일본의 대한국 탄압도 국내적 외교적 더욱 강한 탄압을 불러왔을 수도 있는 결과도 낳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떤 결과가 있던 우리 민족은 독립을 쟁취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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